About 통영누비

섬세하고 우아한 멋으로 최상의 제품으로 인정받습니다.

Tongyeong Nuby

섬세하고 우아한 멋

“통영누비”는 두겹의 천 속에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색상이 아름답고, 기하학적인 누비문양이 정교하여 유명백화점에서도 최상의 제품으로 인정받습니다.

통영누비 유명성에 대한 증명

역사적 입증자료

조선시대 최초의 불경언해서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납’ 자를 훈민정음 ‘누비’로 표기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납의는 스님의 어깨에 걸치는 검은색 법의로서 그 기원은 B.C 7세기경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들어오면 누비는 복식을 비롯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었으며, 여러 가지 누비용품들은 그 시대 여성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조형품으로서 전통 한국누비의 특성을 형성하며 발전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납의 입기를 즐긴다고 지봉유설(芝峰類說) 권19 복의, 신발, 버선, 띠 등에서 연령별, 성별, 계급별로 구분 없이 정당하게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통영누비가 명성을 얻고 있는 이유는 이순신 장군이 통영의 지형을 이용하여 임진왜란을 방어했고, 전쟁 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도수군통제영을 통영으로 이전함에 따라 누비는 방법을 이용하여 수군들의 군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통영누비는 관직에 있는 통제사와 관료의 부인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부유층 부인들이 바느질하게 하여 입었던 것이 여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이유는 통영은 남해안의 어업 도시로서 어부들에게 필요한 방한복을 만든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누빔 기술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통영이 자랑할 수 있는 공예품으로 발전된 것이다. 통영누비의 한 줄 한 줄에는 통영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 통영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인들의 정성이 묻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통영에 누비가 자리 잡게 된 것은 많은 수요가 절대적인 원인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통제영 12공방으로부터 유래된 뛰어난 기술력의 대물림

임진왜란 직후 통제영이 두룡표(현, 통영 세병관)로 옮겨와 더욱 창성하자 제반 군기와 진공품(궁궐진상품)을 조성하는 통제영공고 및 공방도 크게 번창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산품 또한 그 품질이 가장 우수하여 <통영>이란 지명을 각각 붙여 통영갓, 통영자개, 통영장석, 통영소반, 통영부채, 통영누비 등으로 칭하여 통영에서 만들어진 각종 공예품을 조선시대 최상품을 일컫게 되었다.

이와 같이 통영은 12공방으로부터 유래된 장인정신의 얼이 살아 숨쉬는 지역으로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온 여인들의 전통누비기술이 그로 계승되어 보존되고 있는 국내유일의 지역이다.